객체지향과 인지 능력
사람들이 객체지향을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패러다임라고 말하는 이유는 객체지향은 세상을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객체들로 분해할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인지 능력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좀 더 단순한 객체들로 주변을 분해함으로써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려고 한다. 따라서 객체는 인간이 분명하게 인지하고 구별할 수 있는 물리적인 또는 개념적인 경계를 지닌 어떤 것이다.
하지만 유사성은 여기까지다. 객체지향 패러다임의 목적은 현실 세계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사람의 손길 없이 스스로 불을 밝힐 수 없는 현실세계의 전등과는 다르게 소프트웨어 세계의 전등은 스스로 처리가 가능하다. 이렇게 우리는 유사하면서도 이질적인 객체지향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
객체, 그리고 이상한 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어떠한 장소를 가기 위해 어떠한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키를 늘리고 줄일 수 있다.
앨리스의 키를 변화시는 것은 앨리스의 행동으로 행동에 따라 앨리스의 상태가 변하게 된다. 즉, 앨리스가 한 행동의 결과는 앨리스의 상태에 의존적이다.
또한, 어떤 행동의 성공 여부는 이전에 어떤 행동들이 발생했는지에 영향을 받는다. 이는 행동 간의 순서도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앨리스가 어떠한 행동을 하여 상태가 변하더라도 앨리스가 앨리스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앨리스는 상태 변경과 무관하게 유일한 존재로 식별 가능하다.
이 내용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 앨리스는 상태를 가지며 상태는 변경 가능하다.
- 앨리스의 상태를 변경시키는 것은 앨리스의 행동이다.
- 행동의 결과는 상태에 의존적이며 상태를 이용해 서술할 수 있다.
- 행동의 순서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 앨리스는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유일하게 식별 가능하다.
지금까지 설명한 앨리스의 특징은 객체의 특징과 중요한 공통점 몇 가지를 공유한다.
객체, 그리고 소프트웨어 나라
객체의 실체는 상태(state), 행동(behavior), 식별자(identity)를 지닌다. 아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상태, 행동, 식별자를 지닌 실체이며, 소프트웨어 안에 창조되는 객체 또한 상태, 행동, 식별자를 지닌다.
객체란 식별 가능한 개체 또는 사물이다. 객체는 자동차처럼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인 사물일 수도 있고, 시잔처럼 추상적인 개념일 수도 있다. 객체는 구별 가능한 식별자, 특징적인 행동, 변경 가능한 상태를 가진다. 소프트웨어 안에서 객체는 저장된 상태와 실행 가능한 코드를 통해 구현된다.
상태
상태가 필요한 이유?
상태를 이용하면 과거의 모든 행동 이력을 설명하지 않아도 행동의 결과를 쉽게 예측하고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비행기 탑승 5분 전인데도 체크인을 하지 않았다면, 비행기를 못 탈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이렇듯 상태를 이용하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기반으로 객체의 행동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상태와 프로퍼티
프로퍼티란?
객체의 상태를 구성하는 모든 특징을 통틀어 객체의 프로퍼티(property)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프로퍼티는 변경되지 않고 고정적이기 때문에 정적이지만 프로퍼티 값(property value)은 변경될 수 있기 때문에 동적이다.
앨리스가 음료를 들고 있으면 앨리스 객체와 음료 객체는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하지만 앨리스가 음료를 버리게 되면 이 관계가 사라진다.
변경된 앨리스의 상태를 보면 선이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점의 앨리스는 음료에 대해 알지 못하는 상태로 변경됬음을 의미한다.
왼쪽 사진의 선을 객체와 객체 사이의 의미있는 연결이라 하며 링크(link)라고 부른다. 링크는 객체가 다른 객체를 참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객체와 객체 사이에 링크가 있어야만 송수신을 할 수 있다. 즉, 링크를 통해서만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링크와 달리 객체를 구성하는 단순한 값은 속성(attribute)이라고 하며, 앨리스의 키와 위치는 단순한 값으로 표현되므로 속성이다.
상태는 특정 시점에 객체가 가지고 있는 정보의 집합으로 객체의 구조적 특징을 표현한다. 객체의 상태는 객체에 존재하는 정적인 프로퍼티와 동적인 프로퍼티의 값으로 구성된다. 객체의 프로퍼티는 단순한 값과 다른 객체를 참조하는 링크로 구분할 수 있다.
객체는 스스로 상태를 변경해야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객체는 스스로의 행동 의해서만 상태가 변경되는 것을 보장함으로써 객체의 자율성을 유지한다.
행동
상태와 행동
객체의 상태를 바꾸는 것은 객체의 자발적인 행동 뿐이다. 이는 행동이 부수 효과(side effect)를 초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수 효과 개념을 이용하면 객체의 행동을 상태 변경의 관점에서 쉽게 기술이 가능하다.
상태와 행동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관계가 있다.
- 객체의 행동은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
- 객체의 행동은 상태를 변경시킨다.
이것은 상태라는 개념을 이용해 다음의 두 가지 관점에서 서술할 수 있다.
- 상호작용이 현재의 상태에 어떤 방식으로 의존하는가? ex) 앨리스의 키가 40cm 이하라면 문을 통과할 수 있다.
- 상호작용이 이렇게 현재의 상태를 변경시키는가? ex) 문을 통과한 후에 앨리스의 위치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바뀌어야 한다.
협력과 행동
객체가 다른 객체와 협력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객체에게 요청을 보내는 것이다. 요청을 수신한 객체는 이를 처리하기 위해 적절한 방법에 따라 행동한다. 따라서 행동은 객체가 협력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객체는 다른 객체와 메시지를 통해서만 통신이 가능하며 수신된 메시지에 따라 적절히 행동하면서 협력에 참여하고 자신의 상태를 변경한다. 이렇게 협력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상태뿐만 아니라 다른 객체의 상태 변경을 유발할 수 있다.
정리하면 객체의 행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 객체 자신의 상태 변경
- 행동 내에서 협력하는 다른 객체에 대한 메시지 전송
행동이란 외부의 요청 또는 수신된 메시지에 응답하기 위해 동작하고 반응하는 활동이다.
행동의 결과로 객체는 자신의 상태를 변경하거나 다른 객체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객체는 행동을 통해 다른 객체와의 협력에 참여하므로 행동은 외부에 가시적이어야 한다.
상태 캡슐화
위 사진을 보면 앨리스가 음료수를 마셨고, 음료에게 마셨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둘의 상태는 알 수 없다.
이것이 캡슐화이다. 객체는 상태를 캡슐 안에 감춰둔 채 외부로 노출하지 않으며, 객체가 외부에 노출하는 것은 행동 뿐이다. 외부에서 객체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역시 행동 뿐이다.
캡슐화 하는 것은 객체의 자율성을 높이고 협력을 단순하고 유연하게 만든다. 이것이 상태를 캡슐화해야 하는 이유이다.
식별자
객체를 서로 구별할 수 있는 특정한 프로퍼티가 객체 안에 존재하는 데, 이 프로퍼티를 식별자라 한다.
값과 객체의 차이점은 식별자의 유무이며, 모든 객체는 식별자를 가지는 반면, 값은 식별자를 가지지 않는다.
값(value)의 경우, 두 인스턴스의 상태가 같다면 두 인스턴스를 같은 것으로 판단한다. 값이 같은지 여부는 상태가 같은지를 이용해 판단하는데 이 성질을 동등성(equality)이라고 한다.
이렇게 상태를 이용해 동등성을 판단할 수 있는 이유는 값의 상태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값의 상태는 결코 변하지 않기 때문에 두 값이 같아면 언제까지라도 두 값은 동등한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값은 식별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면, 객체는 시간에 따라 변경되는 상태를 포함하며, 행동을 통해 상태를 변경한다. 따라서 가변 상태를 가지기 때문에 이를 식별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렇게 식별자를 기반으로 객체가 같은지를 판단할 수 있는 성질을 동일성(identical)이라고 한다.
식별자란 어떤 객체를 다른 객체와 구분하는 데 사용하는 객체의 프로퍼티다.
값은 식별자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상태를 이용한 동등성 검사를 통해 두 인스턴스를 비교해야 하지만 객체는 상태가 변경될 수 있기 때문에 식별자를 이용한 동일성 검사를 통해 두 인스턴스를 비교할 수 있다.
Integer 클래스로부터 생성된 숫자는 객체인데, 식별자를 가지고 있을까?
이런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객체와 값을 지칭하는 별도의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참조 객체(reference object) 또는 엔티티(entity)는 식별자를 지닌 객체를 가리키고, 값 객체(value object)는 식별자를 가지지 않는 값을 가리킨다.
여기까지가 객체의 중요한 특성인 상태, 행동, 식별자에 대핸 내용이다. 이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객체는 상태를 가지며 상태는 변경 가능하다.
- 객체의 상태를 변경시키는 것은 객체의 행동이다.
- 행동의 결과는 상태에 의존적이며 상태를 이용해 서술할 수 있다.
- 행동의 순서가 실행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 객체는 어떤 상태에 있더라고 유일하게 식별 가능하다.
기계로서의 객체
개발자들의 주된 업무는 객체의 상태를 조회하고, 객체의 상태를 변경하는 것이다. 여기서 객체의 상태를 조회하는 작업을 쿼리(query)라고 하고 객체의 상태를 변경하는 작업을 명령(command)라고 한다. 객체가 외부에 제공하는 행동은 대부분 쿼리와 명령으로 구성된다.
기계가 있을 때, 기계를 분해하지 않는 한 기계의 내부는 볼 수 없다. 대신 사람은 기계 외부의 버튼을 통해서만 기계와 상호작용 할 수 있다.
이 기계를 객체라고 했을 때, 사용자가 기계의 버튼을 눌러 상태를 변경하거나 상태 조회를 요청하는 것은 객체의 행동을 유발하기 위해 메시지를 전송하는 것과 유사하다.
객체에 접근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객체가 제공하는 행동뿐이다. 즉, 사용자는 객체가 제공하는 명령 버튼과 쿼리 버튼으로 구성된 인터페이스를 통해서만 객체에 접근할 수 있다. 이것을 캡슐화라고 한다.
행동이 상태를 결정한다
상태를 중심으로 객체를 바라보면 안된다. 이유는 아래와 같다.
- 상태를 먼저 결정할 경우 캡슐화가 저해된다. 상태에 초점을 맞추면 상태가 객체 내부로 깔끔하게 캡슐화되지 못하고 공용 인터페이스에 그대로 노출되버릴 확률이 높아진다.
- 객체를 협력자가 아닌 고립된 섬으로 만든다. 상태를 먼저 고려하는 방식은 협력이라는 문맥에서 멀리 벗어난 채 객체를 설계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협력에 적합하지 못한 객체를 창조하게 된다.
- 객체의 재사용성이 저하된다. 상태에 초점을 맞추면 다양한 협력에 참여하기 어렵기 때문에 재사용성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행동이 협력에 참여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행동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객체의 적합성을 결정하는 것은 상태가 아니라 행동이다. 따라서 객체의 행동을 먼저 결정하고 그 후에 행동에 적절한 상태를 선택해야 한다.
객체가 협력에 참여하면 완수해야 하는 책임이 생긴다. 따라서 어떤 책임이 필요한가를 결정하는 과정이 전체 설계를 주도해야 한다.
책임-주도 설계(Responsibility-Driven Design, RDD)는 협력이라는 문맥 안에서 객체의 행동을 생각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응집도 높고 재사용 가능한 객체를 만들 수 있게 한다.
온유와 객체
객체지향을 현실 세계에 은유할 수 있지만, 현실 세계를 모방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객체지향을 현실 세계의 추상화(실제 사물에서 자신이 원하는 특성만 취해 핵심만 표현하는 행위)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 속의 객체와 소프트웨어 객체 사이의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현실에서는 수동적인 객체가 소프트웨어 객체로 구현되면 능동적으로 변한다. 현실의 트럼프 카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소프트웨어 세계에서는 말을 할 수도 있고, 춤을 출 수도 있으며 전지전능한 존재가 된다. 이것의 의인화(anthropomorphism)라고 한다.
따라서 객체지향 세계는 현실 세계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모습을 조금 참조만 했을 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것이다.
이 글은 객체지향의 사실과 오해를 읽고 공부하며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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